중소기업 신용등급 하락, 대출 문턱 높아져…생태계 붕괴 위기
국내 중소기업들이 전례 없는 자금난에 직면하고 있다. 최근 들어 신용등급 하락이 가속화되면서 은행권 대출 문턱은 더욱 높아졌고, 담보가 부족한 기업들은 자금 조달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에 몰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히 개별 기업의 위기를 넘어, 생산 차질과 고용 감소, 지역 경제 침체로 이어지며 중소기업 생태계 붕괴라는 심각한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1. 신용등급 하락의 현실
2025년 상반기, C등급 이하로 평가된 중소기업의 비율은 29.8%에 달한다. 이는 통계 집계가 시작된 2021년 이후 최고치다. 코로나19 이후 경기 회복이 지연되고,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이 지속되면서 영업이익이 급감했고, 이에 따라 신용등급 하락 기업이 빠르게 늘어났다.
예를 들어, 전선 부품을 납품하는 한 중소기업은 구리 가격 인상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지 못해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고, 결국 5억 원의 운전자금 대출이 두 은행에서 모두 거절당했다. 또 다른 비철금속 업체 대표는 은행이 기존 금리의 3배를 요구해 대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2. 대출 문턱의 급격한 상승
은행권 대출 통계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올해 들어 7월까지 중소기업 대출 잔액이 전달보다 감소한 달이 세 번이나 발생했다. 이는 과거 경기 성장기에는 보기 어려운 현상으로, 은행권 스스로도 “중소기업 활력이 저하된 결과”라고 진단하고 있다.
담보대출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 시중 4대 은행의 중소기업 담보대출 비중은 상반기 말 기준 80%에 이르렀다. 그러나 영세기업 다수는 부동산이나 기계 설비 등 담보 자산이 부족해 대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이로 인해 담보 없이 자금 융통이 가능한 기업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3. 자금난이 불러오는 악순환
신용등급 하락 → 대출 불가 → 자금난 심화 → 생산 차질 → 매출 감소 → 추가 신용등급 하락.
이 구조적인 악순환이 지금 우리 중소기업 생태계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다.
특정 기업이 자금 조달에 실패하면 생산 라인이 멈추고, 이 회사에 부품이나 원자재를 납품하던 다른 기업들도 연쇄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이러한 연쇄 부실은 곧 고용 축소로 이어지며, 이는 지역 사회 소비 위축과 내수 시장 침체로 확산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2025년 5월 말 기준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95%로, 2019년 이후 최고치다. 불과 5개월 전보다 0.33% 포인트나 상승했다.
4. 정부와 금융권의 대응
정부와 금융권은 다양한 긴급 처방을 내놓고 있다.
- 정책금융대출 조건 완화: 기존 대출에 대해 최대 7년 분할 상환, 1%포인트 금리 인하 지원.
- 대안 신용평가 도입: 전기요금 납부 이력, 노란우산공제 가입기간 등 비재무 데이터를 활용해 대출 심사.
- 구조개선자금 지원: 기술성과 사업성이 있으나 담보력이 부족한 기업을 대상으로 조기 정상화 자금 지원.
시중은행들도 유망 기업이 단기 자금난으로 도산하지 않도록 분할 상환 기간을 연장하거나, 기업고충지원센터를 확대 운영하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부실 채권을 매입해 채무 부담을 줄이는 ‘새 출발기금’ 사업을 진행 중이다.
5. 전문가의 제언 – 단기 처방을 넘어 구조 개선으로
전문가들은 단기적인 자금 지원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 판로 확대: 해외 전시회 지원, 수출 네트워크 강화, 수출국 관세 인하 노력.
- 수출 다변화: 미국·중국 의존도를 줄이고, 동남아·유럽 등 신흥 시장 개척.
- 내수 활성화: 공공 구매 확대와 지역 소비 촉진.
- 자발적 구조조정: 경쟁력이 낮은 기업의 산업 재편 참여 유도.
동아대학교 오동윤 교수는 “저성장과 원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에서 단순한 금융지원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수출 촉진과 내수 활성화를 병행하고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 지속 가능한 금융지원 체계의 필요성
현재의 금융지원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다음과 같은 중장기 전략이 필요하다.
- 대안 신용평가 활성화: 재무제표 중심의 평가를 보완해 더 많은 중소기업이 금융 접근성을 확보.
- 민관 협력 모델 확산: 민간이 유망기업을 발굴하면 정부가 금융지원을 담당하는 구조 마련.
- 판로 및 수익성 강화: 수출 다변화와 내수 활성화를 통해 기업의 자생력 회복.
중소기업은 국가 경제의 허리이자 고용의 핵심 기반이다. 지금과 같은 신용등급 하락과 대출난이 장기화된다면, 단순히 몇몇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경제 구조에 치명적인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단기 처방과 함께, 중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금융지원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